Yeonhui-dong Private Garden (2019-)

with Seongyeon Jo



오래도록 서 있느라 빛이 바래버린 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벽을 따라서 가장자리로만 심어진 나무들이 이어서 보였고, 차분한 적막이 느껴졌다. 대문으로 흐르는 경사를 따라서 비가 오면 흙탕물이 쓸려 내려가는 문제가 있었고, 환경이 맞지 않아 이전에 있던 잔디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정원 안의 오래 자란 나무들은 풍채가 상당했지만, 벽을 따라서 줄줄이 심어져 깊이를 전하지는 못하였다. 문을 열자 반려견 ‘마루’가 반가이 마중을 나와준다. 마루에게는 산책을 다녀오고 난 후 마당에 한껏 드러누워 등을 비빌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마루를 위한 공간과 주인분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처음 느꼈던 차분한 적막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 근원이 오래된 나무와 담장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둘을 염두에 두어 생각을 이어갔다.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바닥포장면은 짙은 톤의 화산석을 택하고, 식물의 경우 잎의 색은 어둡지만 꽃이 피어날 때면 그늘을 밝혔으면 했다. 교목들 앞으로는 관목을 더 앞으로 심어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려 했다. 기존 상록수와 낙엽수 간의 비율은 적절하여 겨울에도 안정적인 모습이었기에 그 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양복사나무, 까마귀밥여름나무, 팥배나무를 추가로 심어 사계절에 적용될 공간의 구조를 형성하였다.

나무 아래는 적당히 빛이 새어드는 이상적인 그늘이었기에 숲을 떠올릴 수 있었다. 숲을 구현해야 했다. 이른 봄 숲에서는 활기로 가득 채워진다. 관중과 같은 고사리 종류는 동그랗게 만 잎을 서서히 펼쳐내며 자신을 빛낸다. 한편 현호색(Corydalis)과 같은 식물들은 작은 꽃을 금세 내어 지표면을 채운다. 아스틸베나 승마와 같이 여름이나 가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줄기부터 내기 시작하여 서로들 춤을 추는 듯하다. 자연의 숲을 기억하여 봄이 왔음을 알리도록 하얀 꽃을 피우는 Tiarella wherryi와 한라개승마 (Aruncus aethusifolius)가 그늘을 밝혀주었으면 했다. 그 사이로는 가는 잎의 Carex ‘Silk Tassel’과 넓은 잎의 Hosta ‘Blue Cadet’, ‘Fragrant Bouquet’으로 대비를 이루는 면을 형성하였다. 관중(Dryopteris crassirhizoma)은 그 안에서 반복되어 시선을 집중시킨다.

영역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집의 벽과 맞닿아있는 작은 화단은 속새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 바로 앞의 목련이 있는 자리에는 햇빛이 더욱 오래 머물렀기에 다른 식물들이 더 심어졌다. 하지만 반대의 영역과 이어지도록 Hakonechloa macra를 가교역할로 두고 Ammi majus와 Allium sphaerocephalon의 조합을 통해 색을 더할 것이다. 가을엔 Miscanthus sinensis ‘Little Kitten’의 이삭이 햇빛을 머금을 것이다.




조성을 마친 전경, 3월 21일



식재 후 3달이 지난 7월 여름, 다시 정원을 방문하였다. 처음 공간에서 느꼈던 차분한 적막과 함께 식물들은 금새 자라있었다. 의도했던 숲의 영역은 보다 더 깊어졌고, 청록색 톤의 잎과 흰테무늬 잎의 조화로 청량하고 무거웠다. 하부 그래스의 경우에는 기존에 생각했던 Carex 'Silk Tassel'이 생육속도가 저조한 편이어서 Carex comans 'Bronz'와 무늬사초 종류를 추가로 심었다. 기록보다 빛을 선호하는 것 같다. 수양꽃복사나무에는 잎병의 흔적이 보였다. 심을 당시에 뿌리 상태가 좋지는 못해 경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당시의 수형만을 보고 간과한 터이다. 병든 잎(병원체)을 제거해서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가지의 성장세는 상당하여 나무의 건강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경관적으로도 좋을 접점을 내기가 쉽지가 않다. 내년 겨울에는 보르도액을 미리 써볼 계획이다.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정원 사진이 있지만, 그 아름다움이 찰나의 순간이며 그 이면에 정원사의 손길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쓰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엄청난 대가라면 단번에 고치지 않을 글을 쓰겠지만, 그 외 대개의 경우 좋은 문장들은 수십 번의 퇴고를 거치며 탄생할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것도 점차 퇴고의 과정과 같다고 느끼고 있다. 비단 정원 일만 그렇겠냐만은. 실제하는 공간은 식물 뿐만 아니라 곤충, 미생물 등 생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난관이나 그를 헤쳐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가드닝의 일부이다. 다행히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아쉬운 점은 볼 수 있어 보완할 수 있으니 보다 부지런히 움직여 그 부분을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허상보다는 진실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