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oji, A Little Room to Care (2025)
Hong's House, Korea


Santuary Series 3, 2025
Stone, Water, Pond Liner
Hong's House, Korea


note

입구를 지나 들어서게 되는 후원에는 비워진 마당이 있다. 마당 위 지붕에선 빗물이 학의 모양을 한 금속의 입으로부터 떨어진다. 흙에 스며드는 한편 넘치게 된 물은 모두 하수처리 된다. 홍건익가옥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철저하게 처리되어진다. 이를 위해 가꾼 손길이 감탄스러운 한 편 그 정성의 기원이 자연으로부터 귀찮아질 수 있는 일은 줄이려던 건지 궁금해진다. 여지가 없다는 건 한편으론 한 쪽으로 한없이 배척하여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하지만 자연은 원체 여지가 많다. 혹은 여지가 자연을 탄생시켰고 여전히 흐르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떤 생물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던 일말의 여지가 다른 생물들을 태어나게 하고, 진화를 이끌어낸다. 비가 오고 나서 미처 흡수되지 못하거나 흐를 대로 흘렀지만 바다에 닿지 못해 여지없이 남겨진 물은 여지를 만들어낸다. 흐르지 않아서 천천히 스며드는 물로 인해 어떤 씨앗은 싹이 트고, 뿌리를 뻗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철새는 미처 스며들지 않은 물로 목을 축이고 깃을 씻어내어 다시금 날아갈 기력을 회복한다.  ‘여지’와 ‘여유’는 모두 같은 ‘남을 여’자를 쓴다. 나 이외의 다른 생명을 포용하려는 여분의 마음으로부터 다른 생명이 살아갈 가능성이 생겨나며, 나의 일상과 삶, 도시의 생태계에도 여유가 생긴다. 얕게나마 흙을 걷어내었던 일은 여지를 만드는 일이다. 더위에 지쳐 더는 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새에게 살아갈 여지라도 틔어 내보려고 하는 일이다. 돌 틈에도 여지가 있다. 단단히 다져져서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씨앗을 싹 틔울 여지, 어떠한 벌레는 그 작은 틈에 의탁할지도 모른다.






Santuary Series 2 - Sotdae, 2025
Wooden batons, stainless steel
Hong's House, Korea


note

과거 선조들은 솟대를 세움으로써 자신의 마을이 신의 보호를 받는 신성한 지역이라고 여겼다. 솟대 위에는 새를 앉혀놓았는데, 풍년을 기리는 뜻이기도 하였고 철마다 이동하는 새들을 보며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조로 여겼다고 한다. 새는 이처럼 길한 존재로 우리네 일상에 가까운 생명이었다. 정원의 경우에도 새가 찾아오는 건 나의 식물을 먹고 사는 여러 곤충들을 조절해 주는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그 일환으로 새를 반기는 상징물이기도 하면서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솟대를 상상한다. 솟대에는 얕은 수반이 있어 새들이 목을 축이거나 깃털을 씻어낼 수 있다. 더불어 솟대이니만큼 최상단에 작은 새들이 앉아있다. 이수빈작가님의 새 조각이다. 이 생각은 올 여름 갈수기에 그 일말의 물조차 찾을 수 없어 탈진한 새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하였다.





A Garden Made of Language, 2025
Paper, offset printing, 215 × 290 mm, 8 set
Hong's House, Korea


note

정원을 일로 여긴 지 어언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기념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온 것 같다. 그러던 중 올해 불현듯 감탄의 정도와 주기가 줄어든 나를 보며 뭔가를 새로 채우는 것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필요를 느꼈다. 의뢰인의 일을 할 때에도 전반적인 맥락이 읽혀야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모든 요소를 나열하고 그 관계를 살피며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나의 일과 여정에는 그렇지 못했다. 일을 시작시키는 데에만 익숙했지, 일을 이 정도로 지속하는 것엔 서투름을 맞이한 것 같다. 한편으로 다행인 건, 19년도에 멋모르고 시작했던 그때부터 매일의 일기가 될 순 없더라도 적어 온 기록이 있다. 항상 곁에 있었는데, 지난 시간을 마주할 용기나 여유가 없었다. 글에는 당시의 내가 위태롭게 서 있기도, 감탄하며 행복했을 때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문과 의심도 새겨져 있었다. 그 일련의 모습이 일종의 균형을 잡으려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비단 정원사뿐만 아니라 일을 애정하는 직업인이라면 쉽게 겪는 과정일 것이다. 그 과정의 기록을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상에만 존재하는 글을 실제 사물로 만드는 일은 Office SHDW에서 진행해 주었다. 마치 그동안의 시간이 애벌레가 잎을 먹는 데에만 집중하여 배를 채우며 커가는 시간이라면, 이제는 번데기가 되어 조직을 변형하고 정리하고 새로이 형성하는 성숙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 과정에 따라 껍데기를 깨어내 날개를 펴낼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에 이를 것이다. 정원은 항상 과정이다. 계속해서 변하는 자연의 흐름에 변함없는 완결을 지을 수 없다. 정원이 자라듯 정원사도 자라기에 정원사에도 정원의 과정을 겪는다.